피플 > 환자 이야기 1%의 희망 2023.05.16

 

“약사님, 괜찮으세요?” 수십 년째 약국을 지키던 나는 약사에서 췌장암 환자로 상황이 달라졌다. 단골 손님들에게 투병 소식을 알리긴 했지만 막상 머리카락이 빠지고 손톱과 피부가 새카맣게 변하자 다들 놀란 표정이었다. “아프다고 누워 있으니까 더 아픈 것 같더라고요. 나와서 손님들도 만나고 바깥 구경을 하니까 살아있는 기분이 드네요.” 아플수록 더 웃고 움직이라는 건 늘 하던 이야기인데 듣는 손님들의 반응이 이전과 달랐다.

 

우울한 예보

2021년 1월의 어느 날 건강검진 결과를 받아 보았다. 심상치 않은 수치 하나가 보였다. ‘나에게도 큰일이 닥치려나?’ 특별히 아픈 곳은 없지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건강검진을 받았던 약국 근처 병원으로 갔다. 입원 후 정밀검사 끝에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느닷없는 장대비가 나에게만 내리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미리 발견하지 못했다면 길어야 6개월이 남았을 겁니다.” 의사의 이야기가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약국 손님들도 내 위로가 잘 들리지 않았겠지?’ 믿기 힘든 이 상황을 타인의 일처럼 차근히 곱씹었다. “췌장암은 완치율이 낮은 병이죠? 끝이 뻔한 치료에 힘쓰고 싶지 않네요.” 어차피 인생의 끝자락에 와있는 거라면 입원과 항암 치료 대신 의연하게 삶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애가 닳는 건 오히려 젊은 의사였다. “하루하루 의술이 발달하고 내일은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왜 미리 포기하세요? 제 가족이라면 병원에 끌고 가서라도 치료받게 할 거예요.” 그러면서 자신이 예전에 일했던 서울아산병원을 추천했다. 마침 집에서 가까운 병원이었다.

남편에게 소식을 전하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아침에 출근한 아내가 혼자 병원에 입원해 췌장암 소식까지 전했으니 어리둥절한 게 당연했다. 이미 마음의 정리를 마친 나는 앞으로의 계획을 이어 말했다. 서울아산병원의 치료를 받으면서 약국에는 계속 나가겠다고 했다. 남편이 말했다. “다 당신 뜻대로 하되, 병원에 갈 때는 꼭 나랑 같이 갑시다.”

 

희망은 움직이는 거야!

종양내과 유창훈 교수를 처음 만난 날 항암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날 밤 모든 걸 토했다. 손이 저리고 걸을 때마다 자갈 섞인 모래사장을 걷는 것처럼 다리가 저릿하고 따끔했다. 매 순간 암환자가 된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피부도 내내 간지럽다가 모두 벗겨졌다. 조금 나아졌다 싶으면 항암 치료를 받는 날이 돌아왔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극심했던 밤에 처음으로 눈물을 쏟았다. 남편은 밤새 내 팔과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하루 이틀 아픈 것도 아닌데 그냥 자라고 해도 소용없었다. “여보, 이렇게라도 도울 수 있는 게 낫지. 당신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 혼자 남아서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니까….”

실제로 췌장암에 대해 찾아볼수록 안 좋은 사례들이 줄을 이었다. 혹시나 하던 마음이 두려움에 잠기는 건 금방이었다. 마음을 다잡았다. ‘1%의 희망이 있다면 그 주인공은 나일 거야!’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하며 한두 시간이라도 약국에 출근했다. 예전과 달라진 외모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암환자라면 모두 겪는 통과의례였고 치료 결과가 어떻든 상관없었다. 오늘 하루 내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손님들에게 희망이 전해질 거라고 믿었다. 무엇보다 내 속의 두려움만은 흩어지고 옅어지는 기분이었다.         

 

기분 좋은 힌트

항암 치료는 해를 넘겨 계속됐다. 기다리는 수술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역시 나는 어려운가 보구나’ 하는 마음이 들 때쯤 유 교수가 말했다. “제가 참 많은 암 환자를 보는데요. 광옥 님은 약 효과가 좋은 1%에 속하는 환자분이세요.” 주사 생각만 해도 여전히 속이 메슥거렸지만 왠지 모르게 으쓱했다. ‘이래 봬도 내가 1%의 환자인데…’하며 버틸 수 있었다. 얼마 후 유 교수가 물었다. “요즘도 약국에 계속 나가세요?” “그럼요.” “아주 잘하셨습니다.” 무슨 의미일까. 집에 가는 내내 유 교수의 말을 떠올렸다. 어쩌면 앞으로 일을 계속할 수 있겠다는 힌트 같았다. 내 추측은 맞았다. 일 년 반에 걸친 항암 치료를 종결하며 의료진은 공격적인 치료를 제안했다. 드디어 수술 가능성이 보였다. 다만 개복 후에 확인할 수 있는 암세포 전이 여부가 관건이었다.

수술 후 간담도췌외과 곽봉준 교수에게 믿기 어려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저희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일일이 만져보며 암세포를 확인했어요. 채취한 조직에서도 전이가 발견되지 않았고요. 수술 요건이 매우 안정적이어서 췌장의 꼬리 부분과 비장, 담낭을 무사히 절단했습니다. 아마 이보다 더 좋은 결과는 없을 겁니다!”  

 

죽음 앞에서 만난 삶

수술 후 부작용 때문에 무통 주사를 맞을 수 없었다. 담당 간호사는 수시로 찾아와 나를 살폈다. “선생님, 얼른 퇴근하셔야죠.” 간호사는 알겠다면서 퇴근 시간이 두세 시간이 지나도록 그 자리에 있었다. 꼭 나 때문은 아닐지라도 신경 써주는 마음이 고마웠다. ‘주어진 역할 이상을 해내는 간호사 선생님들 덕분에 가족이 옆에 없어도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거구나!’ 의료진은 “이순신 장군보다 더 대단한 분이 여기 계시네요”라며 진통제 없이 버티는 나를 유쾌하게 응원했다. 하루하루 통증이 줄어들수록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은 가까워졌다. 

오랜만에 정기 진료로 병원에 오는 길이었다. 남편이 뒤늦은 생색을 냈다. “작년 이맘때 내가 당신 몰래 얼마나 마음 고생을 했는지, 어휴~” “죽으면 죽는 거지, 뭘 그래요”하고 응수하다가 사뭇 진지해졌다. “근데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그제야 삶도 보이더라고. 내가 내 일을 정말 좋아했구나, 사람들에게 얻는 에너지가 참 컸구나 싶고. 보통 그런 거 잘 모르고 살잖아.” 우리는 살아있는 이 순간을 음미하듯 천천히 걸었다. 성내천의 화려한 벚꽃은 이미 다 떨어졌지만 푸른 봄빛이 참 눈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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