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 건강 정보 꿋꿋한 예진씨의 겨울 선물 2015.03.16

중국에서 태어나 자란 예진 씨는 1993년 겨울 부모님과 함께 한국에 왔다. 손이 힘차고 부드러웠던 예진 씨는 피부 관리실에서 일을 시작했다. 피부 관리사로 일하며 받은 월급을 20년간 차곡차곡 모아 작년 봄 작은 가게를 열었다.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하루를 살아가던 예진 씨에게 찾아온 절망. “암입니다.” 20년간 힘들게 쌓아온 것들이 그 한마디에 다 날아가고 말았다. 그래도 포기할 순 없었다. “선생님 수술하면 팔은 쓸 수 있나요? 전 일을 계속해야 하는데…” 예진 씨에겐 지켜야 할 사람이 있었다. 어머니. 3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경기도 한 기관에서 요양 중인 어머니의 보호자는 예진 씨뿐이었다. “전 잘 지내고 있어요. 조만간 찾아갈게요.” 힘없는 목소리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지 묻고 또 묻는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예진 씨는 끝내 마음이 아파 울고 말았다. 

 

 

가족이 한국에 온 건 가난 때문이었다. 일자리가 많아 먹고 살 순 있을 거라는 이웃의 말이 결정적이었다. 아버지는 큰 제철소가 있는 포항에 터를 잡았다. 예진 씨의 첫 직장은 미용실이었다. 당시 미용 보조로 받던 월급은 40만 원 정도. 피부 관리사 월급은 70만 원이라는 말에 미용 보조 일을 그만뒀다. 새벽 4시부터 자정까지 약품과 뜨거운 수건을 만지고 주무르는 일을 했다. 일은 고됐지만,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예진 씨를 찾는 단골이 늘어나자 힘들기만 하던 한국 생활에 재미가 붙었다. 

 

병마 앞에 스러진 희망   

 

가족이 함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 일인지 예진 씨는 엄마가 아프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간경화를 앓던 아버지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예진 씨가 의지할 곳은 어머니뿐이었다. “엄마가 참 고생 많이 했어요.” 3년 전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뇌출혈 후유증으로 거동이 어려워진 어머니를 돌봐줄 사람은 예진 씨뿐이었다. 다행히 예진 씨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아파서 쉰 적이 없을 정도로 건강했다.

 

20년간 모은 돈에 대출을 받아 가게를 얻었다. 어머니와 함께 살 작은 전셋집도 마련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다 보니 어느 순간 모든 게 잘 풀리는 것 같았다. 가게를 무리해서 얻은 것 같아 마음이 괜스레 바빠졌다. 일을 늘렸다. 예진 씨의 몸에 이상이 발견된 건 작년 여름부터였다. 손가락에 습진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지나면 낫겠지 하며 버텼는데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너무 무리했나.’ 빨리 치료하고 일해야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병원에선 단순한 피부병이라고 했다. 약을 발랐지만, 습진은 팔을 타고 올라왔다. 그제야 눈앞이 캄캄했다. 단골 손님의 권유에 건강검진을 받았다. “암입니다.” 점점 나아질 거라 믿었던 삶은 병마 앞에서 길을 잃었다.

 

 

먼저 다가와 준 사람들     

 

포항에서 20년 가까이 살았다. 치료를 위해 서울까지 온 것은 손님들의 권유 때문이었다. “암 수술은 가장 잘하는 곳에서 해야지.” 그녀의 고객 가운데 6명이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 그녀의 유방암 진단에 모두 놀라 발을 동동 구르며 서울아산병원으로 가길 재촉했다. 검사 결과가 잘못된 것이길 기도하며 왔는데 1.5cm라던 암은 MRI 검사 결과 2.2cm였다. 예진 씨는 유방·내분비외과 손병호 교수에게 궁금한 게 많았지만 모두 물어볼 순 없을 것 같아 가장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선생님 수술하면 팔은 쓸 수 있나요?” 말끝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선생님, 수술받아도 마사지 일은 다시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래야 엄마 치료비를 낼 수 있어요.”

 

예진 씨의 소원은 책임의 다른 이름이었다. 손병호 교수는 그가 누구하고 함께 사는지, 다른 형제는 없는지, 수술 이후에는 어떻게 살아갈 계획인지 물어보았다. “그럼 혼자에요?” “네.” 그 순간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손병호 교수는 괜찮아질 거라는 격려를 보냈다. “예진 씨의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할게요.” 며칠 후 예진 씨에게 먼저 손을 내민 것은 서울아산병원 사회복지팀이었다. 손병호 교수로부터 예진 씨의 안타까운 사정을 듣게 된 사회복지팀에서 병원비를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시린 겨울을 녹인 선물   

 

예진 씨를 만나기로 한 날. 포항에서 새벽 1시에 버스를 타고 6시에 터미널에 도착했단다. 서울에 혼자 온 건 처음이라 일찍 나왔다고 했다. 날이 추웠다. 어느새 내 손에는 그녀의 머플러가 들려있었다. “선물이에요.” 뜻밖의 선물을 받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를 보고 예진 씨는 머플러를 풀러 어깨에 감싸 주었다. “너무 잘 어울려요.” 누구나 사랑을 말할 순 있지만 정작 본인의 어려움 앞에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위로를 받아야 할 것만 같은 상황에서 주변을 챙기는 굳건한 마음이 고마웠다. “살면서 주는 행복도 있어야죠.” 예진 씨가 웃었다. “암 환자 중 제가 제일 밝지요?” 사람 마음은 다 같다. 그녀의 맘 속엔 여전히 두려움과 걱정이 있을 것이다. “서울아산병원이 저한테 사랑을 많이 줬네요.” 그 순간만큼 예진 씨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Storytelling Writer 이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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