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한 손엔 날카로운 의술을 다른 한 손엔 따뜻한 인술을 2014.07.14

한 손엔 날카로운 의술을 다른 한 손엔 따뜻한 인술을 - 소화기내과 이상수 교수

 

열세 살 소년에게 아버지는 세상 전부였다.
1979년 가을. 직장암으로 투병하던 아버지가 끝내 세상을 떠났을 때, 소년이 의사의 꿈을 꾸게 된 것은 필연이었다.


의대에 합격하던 날 '환자의 절박함을 이해하고 감싸주는 의사가 되어라.'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은 매 순간 그가 가야 할 길을 가리키는 마음의 나침반이었다.
칼질은 왼손, 가위질은 오른손. 한 손엔 젓가락, 다른 손엔 숟가락. 양손잡이인 그의 남다름은 내시경 시술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두 손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빠르고 섬세한 손놀림. 그의 술기를 보고 국내 담도·췌장 분야 일인자, 김명환 교수가 말했다."쭉 지켜봤는데 넌 담도ㆍ췌장 파트오면 잘하겠다."


세계 내시경 치료의 영역을 넓히다

간에서 만들어진 담즙이 장까지 흘러가는 길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 담도. 그 길이 돌이나 염증, 암으로 막혔을 때 뚫어주는 것이 이상수 교수의 주 역할이다. 담도는 장기와 혈관에 둘러싸여 있는데다, 복잡한 곳에 자리잡고 있어 시술이 쉽지 않다는 점이 특징이다. 2004년, 전임강사 때였다. 간기능이 좋지 않아 복수가 차오른 고령의 할머니가 급성담낭염으로 실려왔다. 담낭염의 기존 치료방법인 수술이나 *PTGBD로는 환자를 살릴 수 없다는데 모두 동의했지만, 별다른 대안을 찾지 못했다. 그는 오랫동안 고민하고 준비했던 방법을 시도하기로 했다. 세계 최초의 시술. 그는 자신에게 질문했다.
'이 환자분이 내 가족 이라면 그래도 나는 지금 이 시술을 선택하겠는가'
대답은 '예스'였다. 새로운 시술은 조직 검사용으로만 사용되던 *EUS를 치료의 영역까지 확장한 것으로, 개복하지 않아 시술 후 합병증까지 줄여주는 획기적인 시술법이었다.

 

 

그 후로 2년간 기존의 치료 방법으론 치료가 어려운 아홉명의 환자에게 내시경 초음파 치료법을 했다. 연이은 성공에도 새로운 치료법의 등장은 안전성 논란을 피할 수 없었다. 2012년, 그간의 치료 결과를 토대로 기존 치료법과 내시경 초음파 치료법의 성공률과 합병증 발병률을 비교해 '미국소화기연관학회(Digestive Disease Week)'에 발표했다. 발표가 끝나자 질문이 쏟아졌다. 학회에 참석했던 교수들은 '독보적인 시술법과 연구성과'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논문은 소화기내시경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지 「미국 소화기내시경학회지(Gastrointestinal Endoscopy)」와 소화기학 분야 세계 최고 의학지인 「소화기병학(Gastroenterology)」에 연달아 게재되었고, 현재 세계 내시경 초음파 분야의 새로운 치료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담도ㆍ췌장 파트는 치료방법을 결정하기 전에 고민을 많이 해야 하는 분야인 것 같아요." 췌담도 파트에서 수련한 지 한 달 됐다는 1년 차 임상강사는 그를 통해 치료의 우선순위를 배웠다. "시술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한번 해보자'하고 무리하게 시도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이상수 교수님은 자신의 치료법을 고집하지 않고 환자에게 맞는 치료법이 무엇인지 끝까지 고민한 다음 최선의 치료법을 선택하세요. 그 모습이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모든 치료의 우선순위는 환자다.

* 경피경간 담낭 배액술 (PTGBD) : 피부에 구멍을 뚫어 삽입한 배 액관을 담낭에 위치시킴으로써 정상적으로 배출되지 못하는 담즙을 체외로 배출시키는 시술
* 내시경 초음파 (EUS) : 내시경선단부에 달려 있는 초음파를 통해 담관 및 췌관의 병이 있는 부위를 관찰하고 조직검사를 할 수 있는 검사법


의사, 환자의 마음으로

그에게 있어 학계의 신뢰를 얻은 것보다, 새로운 치료법의 더 값진 성과는 환자의 삶이 이전보다 나아졌다는 점이었다. "의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을 지키는 일입니다. 하지만 살아 있는 오늘 하루의 삶도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는 중요하지요." 외래와 병동 직원들이 말하는 그의 모습은 환자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는 것이었다. 레지던트 시절, 7살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식에 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시한부 췌장암 환자를 지도 교수님 몰래 내보냈던 사건. 회진을 돌며 건네는 평범한 질문에도 진심이 느껴져 인상적이었다는 후배의 이야기 등. 어느 보호자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고인이 된 어머니가 보내지 못한 편지'를 대신 전한다는 글 뒤로 이어지는 한 줄.


'환자를 의사의 재능으로만 대하지 않고 상처받은 마음조차 헤아려주는 당신이 진정한 명의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침대 너머 서 있던 의사는 마치 신 같았다.
의사의 매정한 한마디에 온 가족이 눈물 흘리고, 따뜻한 위로에 잠시 웃음 짓기도 했다.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며 이상수 교수는 매일 좋은 의사가 되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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