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의사들에게 바느질을 가르치는 의사 2014.07.14

의사들에게 바느질을 가르치는 의사  - 뇌졸중센터 안재성 교수

 

‘나만의 박물관을 만들어보자. 나라는 사람을 제일 잘 설명할 수 있고, 나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 그런 물건들로 나를 기념하는 박물관을 채워본다면... 그렇다면, 박물관 제일 좋은 자리에 전시해야 할, ‘국보 1호’ 급의 물건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런 물건이 무엇일지, 어떤 물건을 선택해야 할지...’ 깊은 사색에 빠져들 텐데, 뇌졸중센터 안재성 선생님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두 가지 물건을 꺼내오셨다. 하나는 서울아산병원 개원 10주년 기념 책자, 또 하나는 케이스에 담긴 작은 수술용 칼이었다.


수술 칼은 선생님이 수석 전공의 시절 첫 수술에서 썼던 칼이다.

 

동물실험도 아니고, 보조로 따라 들어간 수술도 아니라, 수술 전체를 지휘하는 입장이 되어서 처음으로 사람의 살을 갈랐을 때 썼던 의미 깊은 물건이다.
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의 초대 과장이자 안재성 선생님의 은사이신 황충진 교수님께서 기회를 내주신 수술이라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몇 번이고 연습을 했던 기억, 처음 칼을 들었던 때의 떨림, 함께 수술을 했던 간호사들이 따로 챙겨뒀다가 수술칼을 선물하던 순간 등...
선생님에게 많은 것을 추억하게 하고, 또 다짐하게 하는 물건이 바로 수술칼이다.
그 사연을 알고 나니, 차갑게 반짝이는 수술 칼이 화사한 꽃다발처럼 예쁘게 보였다.


두 번째 물건인 아산병원 개원 10주년 기념 책자

도서관에나 있어야 할 것 같은 이 책을 선생님은 멋진 액자에 끼워 그림처럼 걸어두셨다.
이유는... 그 책자의 메인 표지 모델이 바로 안재성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헌데, 선생님은 그 사진을 찍었던 기억도, 모델료를 받았던 기억도 없다고 하신다. ‘환하게 불을 켠 수술실
조명 밑에서 이마에 내 천(川) 자가 새겨질 정도로 집중한 젊은 시절의 내가 수술을 진행하고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인생의 한 장면이 스틸사진으로 저장된 것.’ 선생님이
그 사진을 아끼는 건 사진이 젊고 날씬하게 나와서도, 중요한 책자의 표지모델이 됐다는 자부심 때문도 아닐 것이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던 젊은 시절의 패기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또한 책의 제목이자, 개원 10주년 기념행사의 모토처럼 ‘도전과 열정’으로 더욱 더 분발하기 위함이다.
물건은 아니지만, 안재성 선생님의 박물관에 반드시 전시되어야 할 것이 또 있다. 바로 ‘수술 결과는 무조건 좋아야 한다’는 선생님의 좌우명. 선생님이 맡고 있는 뇌졸중이라는
병은 조금씩 젊어지고 있다. 예전엔 어르신들이 주 환자였지만, 요즘엔 3-40대의 젊은 사람들에게까지 내려온 것. 특히 ‘아이들은 어리고, 부모는 은퇴를 했고, 회사에서도 맡은
일이 많은’ 한마디로 한 집안의 가장이 쓰러지면, 선생님은 더욱 긴장을 하게 된다고 하신다.
수술을 잘 해서 그 가장이 건강을 회복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온 가족의 행복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뇌졸중 수술팀은 한마디로 ‘가족 수호특공대’인 셈. 선생님도 한창 자라는 두 아이의 아빠이니, 환자와 같은 가장의 입장에서 수술을 잘 마치고 싶은 마음이 더 크시다고 한다. ‘수술 결과는 무조건 좋아야 된다.’는 선생님의 좌우명이 ‘안재성 박물관’에 빠져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래서 선생님은 오늘도 바느질 연습을 하신다.

막힌 뇌혈관을 뚫어서 피가 돌게 만들어야 하는 뇌수술은 직경(?) 1mm 정도의 가느다란 혈관을 잘라서 다시 이어 붙이는 일이다. 그 1mm 안에 총 16번의 바느질을 해야 한다니, 극도로 세심한 손놀림이 요구되는 일.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수술결과는 커다란 차이가 난다. 수술이 없는 날에는 행여 손놀림이 둔해질까 봐 바느질 연습을 한다는 선생님... 그런 노력 덕분인지 선생님의 바느질 실력은 자타가 공인하는 수준이다. 그 실력을 인정받아 선생님은 6년 전부터 전국의 현직 의사들을 대상으로 바느질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미세혈관문합수술 워커숍이라는 수업을 통해 선생님은 서울아산병원의 수술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전체 의사들의 수준을 선진국 수준에 올려 놓기 위한 노력을 하고 계신다. 차세대 의사교육이 자신의 또 하나의 사명이라고 믿는 선생님은 워크숍 준비에 누구보다 열심이다.


의사가 의사를 가르칠 정도까지 올라가려면 얼마나 많은 자기 채찍질이 필요했을까...

‘좀 더 쉬운 직업을 택할 걸...’, ‘같은 의사라도 수술 안 하나는 의사를 할 걸...’ 이런 후회가 들 만큼 힘들 때도 있지만, 선생님은 수술만 잘 되면 온 세상을 얻은 듯 기쁘다.


안재성 선생님이 생각하는 가장 완벽한 하루는 이런 모습이다.

최선을 다했다는 변명으로는 부족하고, 무조건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친다. 온 몸이 파김치가 됐지만 아내와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향한다. 이때는 의사가 아니라 아빠의 마음으로 퇴근을 한다. 그리고 시원한 맥주라도 한 잔 마시면서 아이들에게 한마디 날린다.


“애들아, 아빠가 오늘도 한 명 살렸다.”
그 순간, 선생님은 세상 부러운 게 아무 것도 없는 행복한 아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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