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의사를 만나면 사람의 눈이라는 우주공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해 얘기한다. 신경외과 의사는 뇌라는 장기가 얼마나 신비로운지를 밤이 새도록 얘기할 사람들이다. 정형외과 의사는 인체라는 건축물이 얼마나 정교하고 과학적인지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한다.
그렇다면 류마티스 관절염을 치료하는 선생님에겐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이창근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진 그다지 매력 없는 과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선생님께 드린 첫 번째 질문은 바로 '전공을 선택한 계기가 무엇인지'였다.
이 과 저 과를 돌며 각종 검사며 진료를 받아봤지만, 원인을 찾을 수 없으니 치료도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의사들이 다들 난감해 하던 그 때, 문제의 답을 찾아낸 유일한 의사가 바로 류마티스 내과 의사였다. 환자가 아팠던 이유는 자가면역질환.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는 면역 세포가 어찌된 이유에서인지 정상세포를 유해물질로 판단해 공격하는 병이다. 당시엔 자가면역질환의 개념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루푸스, 베체트병, 쇼그렌 증후근 등 수많은 난치성 희귀병이 모두 자가면역질환에 속하는 것이다. 젊은 이창근 선생님에겐 환자의 병명을 찾아낸 류마티스 내과 선배님이 최고로 멋있는 의사로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류마티스 내과를 지원하게 되었다.
선생님이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건 초등학교 1학년. 병원에 갈 때마다 그 정갈한 풍경이며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딱 맘에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정했던 장래 희망은 중-고등학교 때도 변하지 않았고 결국엔 꿈을 이룬 것이다. 선생님이 의사라는 직업에 얼마나 애정과 자부심을 느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젊은 시절엔 한동안 의사가 된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마디마디를 주사바늘로 찔러대는 것처럼 아프고, 손가락 발가락이 마치 고목 뿌리처럼 휘어지기 때문에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한꺼번에 주는 악명 높은 병이다.
'생물학적 제제'가 개발된 뒤론 약만 꾸준히 먹으면 충분히 치료가 가능한 것. 헌데, 참을성 없는 환자들은 의사의 처방보다는 '뭐가 관절에 좋다더라.'는 말을 따르길 더 좋아한다. 약을 끊고 민간요법을 시도하던 환자들은 한참 뒤에 병세가 악화돼서 나타나기 일쑤. 그럴 때 선생님은 회의와 좌절을 느낀다고 한다. '내가 의사인데, 왜 내 말을 안 듣지?, 환자를 야단칠 수도 없고, 이상한 걸 못 먹게 따라다니며 말릴 수도 없고...' 무기력감에 시달리던 선생님을 변화시킨 계기는 척추협착증 수술. 선생님이 환자가 돼서 옴짝달싹 못하고 침대에 누워 괴로운 한 달을 보내야 했던 것. 퇴원 후엔 걷는 방법부터 새로 배우는 기나긴 재활치료를 거쳐야 했다. 그 시기를 보내며 뭐라도 의지하고 싶은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수술 뒤, 선생님은 조금 달라졌다. 선생님의 연구실엔 각종 진통제며 치료제들이 가득하다. 약이 어떻게 생겼는지, 먹기 불편하지는 않은지, 약을 먹고 나서 얼마 후에 효과가 찾아오는지... 환자의 입장이 돼서 하나하나 먹어보던 약들이 마치 약국 진열장처럼 모여 있는 것. 종이 처방 한 장 주면서, '열심히 챙겨드세요'만 강요하는 의사, 약이 얼마나 삼키기 힘든지, 먹고 나면 어떤 부작용에 시달리는지는 상관없이 환자가 약 안 먹은 것만 혼내는 의사가 되지 않으려는 선생님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삼십대에 꼭 경험해 봐야 하는 일 중엔 '입원할 정도로 많이 아파보기'가 있다더니, 그 수술이 선생님에겐 성장통이었나 보다.
선생님이 달라지면서 환자들도 달라졌다. 선생님을 믿고 선생님의 처방을 성실히 따르는 환자가 많아졌다. 한번 발병하면 장기전이 되기 마련인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는 똑같은 환자를 십년 넘게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할머니라고 불리기엔 아직 팔팔했던 환자가 진짜 할머니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할머니가 된 환자가 선생님께 했던 감동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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