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 대장내시경센터 변정식 선생님은 '큰일 날 소리'라며 펄쩍 뛰셨다. 대장을 모두 떼어내고 나면 사람은 수시로 변을 보러 다니느라 일상생활이 상당히 불편해질 거라고 하셨다. 게다가 소장에서 미처 다 흡수하지 못한 나머지 수분을 흡수하는 대장의 역할을 못 하게 되니, 땀을 많이 흘려 수분 소실이 심한 운동을 할 때에는 충분한 수분 섭취에 신경을 써야 한다. 더운 나라로의 해외여행을 계획할 때에도 자주 음료를 섭취하도록 주의해야 하니 성가실 수 있겠다. 쓸데없이 변만 저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편안한 삶을 위해 묵묵히 자기 일을 하고 있으니 대장 또한 아껴야 할 중요한 우리 몸의 일부라 하겠다.
변정식 선생님의 첫인상은 7~80년대의 장발 총각을 연상케 하는 헤어 스타일이었다. 일이 바빠 이발을 미뤘더니, 어느새 머리카락이 훌쩍 귀를 덮어버렸다고 한다. 선생님이 이렇게 바쁜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빠르게 늘어나는 질환 중 하나가 바로 대장질환이기 때문이다. 열 길 물속보다 더 들여다보기 어렵다는 사람 속을 환히 보여주는 내시경이 신기해서 소화기 내과를 선택했는데, 아무래도 실수였다며 웃어 보이는 선생님. 하지만 환자가 많아서 스트레스를 받는 기색은 전혀 없어 보였다.
때문에 환자가 많은 건 의사로서는 한편 감사할 일이라고. 그건 곧 배움의 기회가 남들보다 더 많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가 기억할 건 그렇게 얻은 지식을 다시 환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것. 그 책임감이 바로 의사를 의사답게 만드는 기준일 것이다. 그렇다면 환자에게 배운 것을 다시 환자에게 돌려주는 방법은 무엇일까? 다양한 방법들이 있겠지만, 선생님은 좋은 논문을 쓰는 것으로 목표를 정하셨다. 좋은 논문 한 편은 새로운 치료 방법을 제안하고, 기존 의학계의 관행을 바꾸어 새로운 표준을 만들고, 결국 의학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그것이 선생님이 생각하는 대학병원 의사의 사회적 책임이다.
바로 변정식 선생님이 국내 최초로 도입한 대장내시경 점막하박리술이다. 이 시술은 기존의 전통적인 내시경 절제법으로는 한 조각으로 완벽하게 절제해내기 힘든 2cm 이상의 대장 용종이나 조기 대장암의 점막하층에 용액을 주입한 후 특수한 전기 칼로 떼어내는 시술 방법이다. 대장 용종은 대장암의 원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발견 즉시 떼어내는 시술이 필요하다. 헌데 용종을 한 덩어리로 싹둑 잘라내는 것과 조각조각 떼어내는 시술법은 시술 후 결과에서 큰 차이가 난다. 선생님은 큰 용종을 한 덩어리로 잘라내는 점막하박리술의 치료 성적을 장기간 분석하여 점막하박리술 후에는 재발률이 1%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학계에 보고하였다.
반면, 기존 내시경 절제술의 경우 큰 용종을 절제한 후 재발률이 높게는 50% 전후까지 보고되고 있음을 고려하여, 선생님은 대장 용종의 크기나 모양, 종류에 따라 언제 어떤 시술을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규명하려는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이런 연구 이후 많은 의사들이 필요한 경우 큰 용종을 한 덩어리로 떼어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좋은 논문 한 편이 '의학계의 표준을 바꾼' 것이다.
이쯤 되면 조금은 우쭐해도 될 텐데, 선생님은 아직 좋은 논문을 많이 쓰지 못했고 더 노력해야 한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이셨다. 한편으로는, 대장 용종이나 조기 대장암의 치료에서 한발 나아가 이들의 조기 진단을 최적화하기 위한 검진법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면서 대장용종 진단과 치료를 모두 아우름으로써 대장암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포괄적인 대책을 마련하는데 일조하고 싶은 욕심도 숨기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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