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카르페 디엠 [carpe diem]’,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2014.09.16

'카르페 디엠 [carpe diem]',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 종양내과 이대호 교수

 


똑같이 시한부 선고를 받은 두 환자가 있었다.

한 사람은 치료를 중단하고 남은 시간을 아내와 여행을 하며 즐겁게 보냈다. 그리고 시간이 다 했을 때,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였다.
또 다른 환자는 신약 임상시험에 참가했다. 아이들 결혼식은 보고 죽어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신약은 환자에게 딱 맞았고, 병을 이겨낸 환자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14년을 더 살고 있다. 그 사이 아이들은 모두 결혼을 해서 지금은 손자가 아홉이나 있는 행복한 할아버지가 됐다. 그 두 인생 중 누구의 인생이 더 보람되다, 값지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두 사람 다 주어진 인생을 최선을 다해 살아낸 사람들이다.


죽음 앞에서 각자 다른 선택을 한 두 환자를 보면서 젊은 의사는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중학교 시절,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신 뒤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던 만큼, 환자를 살리는 것이 의사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했던 젊은 의사. 하지만 두 환자를 보며 깨달은 것은 의사는 인생이라는 짧은 여행길의 조금 더 경험 많은 가이드 같은 존재라는 것.
시한부 환자에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보다는 주어진 짧은 시간을 의미와 가치로 채울 수 있도록 돕는 가이드가 필요하다는 깨달음이다. 종양내과 이대호 선생님의 경험이다.


종양 내과는 죽음과 가까이 있는 과다.

선생님은 하루에도 몇 번씩 환자를 떠나 보내야 한다. 때문에 환자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환자보다 더 절실히 느끼며 살고 있다. 그러나, 무엇을 먹어야 몸에 좋을지에 대해서만 상의하는 환자, 그나마 남아있는 인생을 포기하고 산에 들어가서 병을 고치겠다고 하는 환자를 보면 가슴 속으로부터 알 수 없는 답답함과 측은함이 함께 올라온다. 남은 인생을 어렵게 만든 휴가 여행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해 보자. 마지막 날인데 먹는 걸 고민하다 시간을 다 보낸다거나, 여기 말고 딴 데 가서 놀겠다는 것이 얼마나 시간낭비인가? 그런 여행객들에게 뭔가 더 기억에 남을만한, 오래 오래 추억하며 행복할 수 있는 일을 만들자고 권하는 가이드가 바로 이대호 선생님이다.


문제는 환자들에게 진심으로 해주고 싶은 말이 무척이나 퉁명스런 말투로 나온다는 것.

선생님은 환자들에게 친절하기는커녕, 일부러 까칠하게 굴고, 가끔은 화도 내는 ‘성깔 있는’ 의사다. 처음엔 환자에게 꼭 필요하지만, 들어서 가슴 아플 말을 해야 하는 게 힘들어서 일부러 냉정한 태도를 유지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버지에 이어, 아버지처럼 따르던 외삼촌도 암으로 돌아 가시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여러 가까운 사람들이 암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보았고, 힘들게 떠나 보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나니, 환자에게 하는 말이 도리어 조금씩 더 직설적이고 독해지게 됐다고 한다. 선생님은 그만큼 환자의 시간이 아까운 것이다. 하지만 다가오는 환자에게는 치료를 담당한 의사로서가 아닌 동반자로서 안내자로서 죽음보다는 그 앞의 의미 있는 삶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는 선생님. 까칠한 의사의 이면엔 환자와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수시로 통화를 하는 이대호 선생님의 진짜 모습이 있다.


그렇다면 선생님의 인생은 어떨까?

매일 매일 환자들을 떠나 보내야 하는 의사의 정신 건강은 괜찮을까? 걱정과는 달리 이대호 선생님은 아주 건강했다.
그 비결은 ‘내 인생도 나의 기대만큼 길지 않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 덕분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매일 매일을 치열하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사는 것만이 의미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단지 작은 일이라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생님의 좌우명은 ‘카르페 디엠(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이다. 선생님이 암이라는 무서운 대상을 미지의 여행지로, 의사는 여행 가이드로 해석하는 것도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내기 위한 나름의 노하우일 것이다.


암 여행자들에게 희망적인 소식이 하나 있다. 15년 전 폐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들의 평균 생존기간은 4개월이었다. 5년 후엔 8개월로 늘었고, 다시 5년 후엔 12개월이 됐다.

지금은 암 진단을 받고도 평균 24개월을 산다. 더 사는 사람도 많아졌다. 시한부 선고로 암을 생각하고, 지레 겁을 먹고 인생을 포기하거나, 암을 치료하는 일에 인생을 걸기엔 너무 긴 시간이다. 때문에 암 환자라도 지금 이 순간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즐겁고 알차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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