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교수의 원래 꿈은 만화가였다. 부모님이 이를 반길 리 없었다. 그래서 다시 고른 진로가 치과의사였다.
“제가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이기도 했지만, 그땐 치과의사가 좋아 보이더라고요. 시작은 좀 싱거웠죠.”
하지만 치의대생으로 수술방에서 처음 구강암 수술을 봤을 때 ‘저거다!’ 싶었다. 교수님이 조직을 떼서 이식하고 복원하는 모습에서
학창 시절 친구의 턱이 기적처럼 돌아온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는 지체 없이 구강악안면외과를 주전공으로 택했다.
구강과 악안면에 발생하는 염증, 골절, 종양 등을 제거하고 턱뼈나 혀 등을 재건해 기능적 회복과 미적인 복원을 다루는 분야다.
해부와 병리에 흥미를 느끼던 그와 잘 맞았다. 교수님이 특이한 해부학적 구조를 처리할 땐 잊어버릴까 봐 수술 기록지나 노트에
그려가며 복기했다. 논문엔 직접 그린 그림으로 이론을 뒷받침했다. 뜻밖에도 그의 그림 실력이 요긴하게 쓰였다.
“구강악안면외과는 창의적인 작업의 연속이에요. 수술할 때도 제 머릿속으로 3차원화하며 종양을 떼고요. 혀나 턱뼈, 얼굴 근육을 떼서
복원시킬 모듈을 디자인하고 조립하는 과정은 환자마다 다르게 설계돼야 하거든요.”
그에겐 좀 특별한 꿈이 있다. 가장 복잡하면서도 다채로운 얼굴 부위를 마치 대동여지도처럼 압축해서 한 번에 볼 수 있는 의학 지도를
그려보고 싶다는 것. 그리고 몸의 다른 부위 뼈를 떼서 얼굴 한 켠에 붙이는 과정이 부담스러운 환자들에게 뼈를 대체할 인공적인
생체물질을 만들어 시술하는 것이다. 아직은 상상에 가깝지만 언젠간 꼭 실마리를 풀어보고 싶다.
좋아서 하는 일인데 보람까지 따라왔다. 골수염으로 턱뼈가 녹아내린 환자도,
다발성 골수종으로 턱뼈를 들어내야 하는 환자도 복원 수술까지 마치면 자국만
조금 남을 뿐. 건강한 얼굴을 되찾은 환자들이 고맙다며 이 교수의 손을 꼭 잡을 땐
이 일 하길 정말 잘했다는 마음이 가득하다.
그에게 특별히 기억나는 환자가 한 명 있다. 3년 전에 치료한 조선족 할머니였다.
구강암 치료 내내 찾아오는 보호자가 없어 이 교수는 마음이 쓰였다.
그래서 틈틈이 할머니와 이런저런 얘길 나눴다. 무사히 암을 이겨낸 할머니는
퇴원 후 커다란 꿀단지와 함께 나타났다. 힘들어 보인다며 그때마다 한술
떠먹으라고. 먹지 않아도 느껴지는 ‘꿀맛’이었다.
“어떤 환자나 일관되게 잘해주고 싶은데 점점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지니 힘들죠.
근데 결국 사람 사이엔 시간보다 마음이 중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초심이 중요한
거겠죠. 의사로서 마지막 날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싶습니다.”
인터뷰가 있던 아침, 그는 새벽에 끝난 수술로 무척 피곤한 상태였다. 종아리뼈 일부를 잘라 턱에 맞추고 근육과 신경을 같이 잡아가며
수술하느라 10시간이 넘게 걸렸다. 수술 자체는 목표대로 진행됐지만, 앞으로의 후유증과 예후 재발률을 보호자에게 설명하려니
마음이 무거웠다.
“제가 아직 의사로서 어린가 봐요. 실망스러운 상황을 얘기한다는 게 늘 힘드네요.”
그는 스스로 칭찬받기 힘든 의사라고 털어놨다. 재밌거나 살가운 사람이면 좋겠지만 그는 필요한 얘기만 하는 성격이었다. 고민 끝에
구강암에 대한 만화를 그려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소통 방법이었다. 다양한 루트로 그의 블로그를 보고
온 환자들은 한층 친근하게 대했다. 만화 덕분에 구강암에 대해 이해하게 됐다는 칭찬도 이어졌다.
“지나가던 철수가 봐도 이해할 수 있는 의료 정보 만화를 만들려고 노력해요. 근데 쉽게 만들려면 그리는 사람은 훨씬 어려워지거든요.
업무 끝나고 1~2시간씩 관련 논문과 레퍼런스를 찾아가며 책임감 있게 그리고 있습니다.”
블로그엔 만화 외에도 지난해 최우수 구연 발표상 입상 소식과 학술 활동, 의료 봉사, 해외연수 의사 교육 등 숨 가쁜 일정이 가득했다.
그는 모든 순간을 전심전력 중이었다.
관련 의료진
연관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