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발견의 기쁨 2017.11.22

발견의 기쁨 - 병리과 김지훈 교수

 

20여 년간 현미경으로 누구보다 자세히 암을 들여다보았다. 한때 암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3년 전 그는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외삼촌을 췌장암으로 잃었다. 어머니의 유일한 혈육이었고,
그와도 꽤 가까운 사이였다. 암을 진단받 고 방사선 치료와 항암 화학요법을 받다 1년 반이 지나 돌아가셨다.
암환자의 보호자가 된 그 순간 그는 암을 다시 보았다.


병의 이치를 밝히다

병리과 김지훈 교수의 주전공은 소화기 병리 판독으로, 주로 대장의 종양 또는 염증성 질환에 대해 진단을 한다. 다시 말하면
환자에게서 떼어 낸 조직을 관찰해 최종 진단을 내리는 것이 그가 하는 일이다. 처음부터 병리학에 끌린 것은 아니다. 메스를 들고
암을 정복하고 싶어 외과의사를 꿈꾸었다. 하지만 인턴시절 병리학을 전공하던 한 선배의 권유로 병리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사물의 이미지를 사진 찍듯 기억하는 자신의 소질을 떠올리며 운명처럼 병리과를 선택했다.

그가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암 환자의 조직검사다. 얇게 저며진 암의 일부 세포를 현미경으로 보면서 그것이 암인지 아닌지 확진한다.
그가 내린 진단으로 치료의 방향이 결정되므로, 긴장의 끈을 늦출 수가 없다. 재발암은 조직이 장기 깊숙한 곳에 위치하는 경우가 흔해
종양 조직을 얻기 힘들다. 재발암의 경우 CT 촬영에서 암이 발견되기까지 대체로 3달 이상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조기 발견이
어렵다는 것도 고민이었다.

‘좀 더 빨리 재발암의 증거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래서 시작한 연구가 혈액검사만으로 암의 여부를 알 수 있는 검사법이다.
이 연구는 올해 6월 국가과제로 선정되었다. 이 연구에 성공하면 혈액 속에 있는 돌연변이 DNA를 검출하는 기법으로 재발암을
빠르게 찾아낼 수 있고, 시시각각 변하는 암세포의 돌연변이들을 비침습적인 혈액채취만으로 진단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즐기면 길이 열린다

 

2011년 보스턴에 위치한 하버드 의과대학 부설 암연구소(다나파버 암연구소)로
2년간 장기 연수를 떠났다. 암의 유발ㆍ전이와 관련된 돌연변이 유전자의 종류와
기능을 탐구하는 아담 바스라는 젊은 연구자 밑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아담 바스 교수는 특히 유전자 연구와 관련된 온갖 실험 기법에 대한 이론적 배경이
풍부했다. 김 교수는 임상에선 접하기 어려운 생물학적 지식의 범위를 넓히며
실력을 갈고 닦았다.
김 교수의 주요 연구 주제는 ‘HER2 양성 위암에서의 약물 저항성의 기전’이었다.
각종 연구 기법을 적용해 마음껏 연구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날은 매주 화요일이었다. 그날 아침에는 하버드 의대와 MIT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세미나가 열렸다. 앞서나가는 암 연구 성과들을 발표하고
토의하면서 아직 출판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데이터를 볼 수 있었다. 출근하는 길이
즐거웠다. 새로운 주제를 접할수록 즐거움은 커졌다.

 

김 교수는 암유전체지도(TCGA:The Cancer Genome Atlas)라는 다국적 연구 사업에 참여해 단시간 내 유전자 염기서열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차세대 유전자 분석기술(NGS) 기법을 익히는 한편 그 프로젝트에서 병리 진단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제한된 유전자만을 보는 기존의 방법과는 달리 NGS는 인간 유전체 전체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기법이었다.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NGS를 비롯한 다양한 연구기법에 대한 지식을 넓혔다.

2013년 귀국을 준비하며 HER2 양성 위암 약제 내성 기전에 대한 연구주제를 확장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다. 연수 기간 중 사용했던
샘플과 연구의 중간 단계 산물들을 모두 한국으로 가져왔다. 하지만 계획과는 달리 한국에 도착한 그에게 떨어진 첫 번째 임무는
NGS의 임상적용이었다. 그는 장세진 교수(병리과)를 도와 준비작업을 시작했다.

마침내 올해 3월 NGS를 임상에 적용해 지금까지 500여 명의 환자에게 실시했다.
“NGS가 임상에 적용되면서 검사를 받은 일부 환자들이 기존의 방법으로는 발견할 수 없었던 유전자 이상을 정확하게 진단받아
그에 맞는 표적 치료제를 선택할 수 있게 됐습니다. 위암 연구를 계속하진 못했지만, 이 일을 통해 환자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게
되었고 저에겐 대장암이라는 새로운 연구 주제가 생겼습니다. 위암 연구를 잠시 미뤄 아쉽기도 하지만, 기회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
늘 있으니까요.”


부모님을 떠올리며

암은 고정불변이 아니다. 같은 종류로 분류된 암이라도 모양은 제각각이며, 한 환자의 암 덩어리 안에서도 암세포의 모양이 다양하다.
더구나 암세포의 유전체는 불안정하여 시간이 흐르거나 특정 항암제 치료 후에는 유전체의 이상 소견도 상당히 변할 수 있다.
암이 어려운 이유다. 여전히 그의 꿈은 ‘진단을 잘하는 의사’다.

“같은 조직이라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자세히 들여다보면 좀 더 잘할 수 있는 여지가 있거든요.”


하루에도 수백 개가 넘는 케이스의 검체를 보다 보면 집중력이 흐려지는 순간이 있다. 그때 그는 평생 자신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해 주신 부모님을 떠올린다.
‘내 가족의 조직이라면….’ 검체 하나 하나에 열정이 담길 수밖에 없다.
그 열정이 지금 누군가의 삶을 괴롭히는 고통을 줄여주고, 희망을 선물하며, 삶을 연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눈앞에 놓인 2㎜의 조직 하나도 허투루 대할 수 없다.

보다 건강한 콘텐츠 제작을 위해 이 콘텐츠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말씀해 주세요.

뒤로가기

서울아산병원 뉴스룸

개인정보처리방침 | 뉴스룸 운영정책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