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의학과 과학의 앙상블 2021.04.20

의학과 과학의 앙상블 - 신경과 이은재 교수

 

고등학교 시절, 신경과 고재영 교수가 「사이언스」에 논문을 게재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과학도를 꿈꾸던
이은재 교수에게 의사도 기초 과학을 할 수 있다는 것, 환자에게 도움이 닿는 연구라는 것이 멋있게 보였다.
그리고 우리 병원 신경과로 이끈 동력이 되었다. 어쩌면 나의 연구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설렘과 함께였다.
 

새로운 선택의 두려움과 기회

전공의 때 만난 고재영 교수는 리서치에 뜻이 있다면 외연을 넓히기 위해 임상에 국한하지 말고 기초 과학까지 경험해 보라고
조언했다. 카이스트의 질병 모델링을 하는 실험실에서 동물실험을 하며 뇌신경질환 모델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군의관 대신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박사 과정을 택한 것이다. 학위가 보장된 것도 아니었다. 도리어 기초 과학 언어를 새로 배우고 임상의에게 다소
배타적인 분위기를 감수해야 했다.

“제가 재미있게 적용해 나갈 연구를 폭넓게 찾고 싶었습니다. 남다른 선택을 하면서 두렵기도 했어요. 그래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갈증이 앞섰습니다.”


생명과학 분야에선 임상데이터를 배제한 채 연구를 진행한다. 환자 안전보다 새로운 가설이 중요한 풍토다. 임상의는 제약회사에서
개발하는 약을 임상에 적용하는 역할을 맡곤 한다. 둘 사이에 중개자의 역할이 필요해 보였다.

“좋은 기초 연구를 발굴해 임상의에게 제안하면 실용적인 결과물을 만들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임상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동물로 모델링하여 1,2상 연구 테이블까지 올리고도 싶었고요.”


병원에 다시 돌아와 뇌졸중을 주전공으로 임상시험을 열심히 배우며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뇌졸중은 기초 과학 중개연구를
적용할 주제가 마땅치 않았다. 신경학계에 새롭게 대두되는 신경면역 분야로 눈을 돌렸다. 펠로우 시기에 또다시 새로운 도전을 택한
것이다. 당시 신경과 과장이자 국내 신경면역 분야를 개척한 김광국 교수가 전폭 지지해 주었다. 요즘은 뇌신경 질환의 상태를 자세히
추적할 수 있는 혈액 마커를 개발 중이다.

“아직 정식 허가를 받기 전이지만 근거를 부지런히 모아서 병원에 적용해 나갈 겁니다. 더 쉽고 정확한 방법으로 많은 환자가 진단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조금 불편한 질문

 

다른 병원에서 뇌졸중을 진단받은 환자가 찾아왔다. 이 교수는 탈수초 증상으로
판단했다. 처방 후 호전 양상을 보여 퇴원을 결정하려던 참이었다. “환자에게
미열이 있습니다.” 전공의의 한마디가 마음에 걸렸다. 하루만 더 지켜보기로 했다.
바로 그날 밤부터 환자의 의식이 처지기 시작했다. 팔다리를 못 쓸 정도로
악화되었다. 어렵게 리스테리아 감염을 발견했다. 추이를 지켜보며 처방을 이어간
끝에 환자는 무사히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건강해진 환자를 외래에서 만날
때면 아찔했던 그때 그 순간이 떠오르지만 성취감도 느껴진다.

“만약 첫 병원에서 뇌졸중 치료를 지속했다면 환자 상태를 장담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다른 병원에선 만나기 힘든 환자를 수없이 만나면서 치료 경험과 성취감을
쌓아갑니다. 제가 가진 무기를 다 써도 회복이 어려운 환자를 만나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연구하면서 새롭게 배워갑니다.”


이 교수도 어린 시절 배가 아파 며칠 입원한 적이 있었다. 통증의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퇴원할 수 있냐는 질문에 ‘퇴원할 수는 있는데 죽을 수도 있습니다’라는
의사의 대답이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이상 진단이 나왔을 때 경험이 없으면 의사도 무섭거든요. 그래서 환자에게 겁을 주게 되고요. 어릴 적 기억 때문에 되도록 환자를
꼼꼼히 보고 친절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합니다. 똑같은 약을 써도 ‘큰 병이 아니니 걱정 마세요’라는 한마디를 덧붙이면 환자들은 훨씬
안도해요. 서울아산병원에 오길 잘했다는 환자들의 칭찬이 참 듣기 좋아요.”

 

 

앞으로의 숙제

환자와의 소통 시스템을 구축하는 숙제를 맡았다. 의공학을 의학에 접목하고 환자와 의사를 연결하는 중개 연구이기도 하다. 환자가
일상에서 스스로 신경학적 증상의 변화와 정도를 기록하는 앱을 개발 중이다. 축적된 환자의 라이프로그를 진료실에 띄워 진료를
보조할 계획이다. 한정된 진료 시간에 의사의 보다 빠른 판단과 충분한 소통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하나의 욕심은 우리 병원에 신경면역센터를 여는 것이다. 암환자의 경우에도 치료 자체가 면역력을 항진시키면서 부수적인 자가
면역 질환을 만든다.

“뇌 질환에서 면역 체계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외국의 가이드라인을 쫓기보다 우리가 리드하는 조건을
다지면 좋지 않을까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게 능사는 아니지만 이은재 교수에게는 명확한 선택 기준이 있다. ‘과연 환자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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