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끝까지, 마지막까지 2019.07.19

끝까지, 마지막까지 - 신생아과 정의석 교수

 

배 속의 아이는 많이 아팠다. 태어나도 몇 주, 아니 며칠을 넘기기 힘들 거라고 했다. 의료진의 설명에도 부모는
하루라도 좋으니 아이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세상에 나온 아기는 예상보다 긴 시간을 버텨주었다.
3주 뒤 수술이 진행됐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일주일 후 아이는 폐 기능 이상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 달 뒤 주치의였던 신생아과 정의석 교수에게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아기의 엄마였다.
“아이를 편하게 보내줘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땐 솔직히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진료실에서
교수님을 만나 우리 아이가 어떤 분들을 만나 어떻게 치료받았는지 들었습니다. 같이 아파하고 안타까워하고
속상해 하는 교수님의 모습에 우리 아이가 살아있는 동안 좋은 선생님을 만나 치료 받았구나! 생각했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사랑으로 진료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일 많은 의사

인턴 시절 정의석 교수의 별명은 ‘일복 많은 의사’였다. 매번 일 많기로 소문난 진료과에 배정되곤 했다. 일이 많아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다양한 환자를 만나 내공을 쌓으며 보통 인턴이 할 수 없는 술기도 척척 해낼 수 있게 됐다. ‘더 이상 무서울 게 없다’고
생각할 무렵 근무하게 된 곳이 신생아중환자실이었다. 적막한 실내에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기계음. 투명한 인큐베이터에 있는 한 뼘의
아이를 보는 순간 ‘아’ 외마디 소리가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지금까지 본 환자 가운데 가장 작고 연약했다. 성인과 소아가 다르듯
신생아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아이는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표정에도 드러내지 않았다. 아이의 상태는 시시각각 변하지만 의료진의
대응은 그보다 빨라야 했다. 극한의 공간이었다. ‘과연 내가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의 마음을 붙잡은 건 자라는 아이들이었다.

“나를 괴롭혔던 아이가 좀 지나니까 커요. 건강해진 아이가 이곳을 나갈 때 보니 너무 예쁜 거예요.”


포기하지 않는 집념

 

정 교수는 2015년 서울아산병원 신생아중환자팀에 왔다. 김기수·김애란·이병섭
교수 등 선배 의사를 비롯해 신생아중환자팀 간호사 모두의 집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남들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죽기 살기’로 매달렸다. 직원 모두가
한마음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자. 그게 서울아산병원이잖아” 하며
격려했다. 숫자로는 설명하기 힘든 결과를 경험하면서 ‘선입견을 갖지 말고 끝까지
해 보자’고 결심했다. 그렇게 집념의 힘을 배웠다.

지난해 초 신생아중환자실에는 1,500g 미만의 아기가 유난히 많았다. 그에겐
하루가 마치 10년 같았다. 연구실 침상에서 쪽잠을 자면서 아픈 아기들을 봤다.
쓰러지듯 잠들었고 잠에서 깨어나도 한동안 눈을 뜨지 못했다. 그 사이 아이들은
자라 따뜻한 엄마의 품으로 하나둘 돌아갔다.

한숨 돌리려던 차 302g의 아기가 중환자실로 들어왔다. 국내에서 가장 작은 아이,
사랑이었다. 생존 확률 1%. 다시 하루하루가 사투였다.

 

13주나 일찍 세상에 나온 사랑이의 장기는 미성숙했고 감염이 발생할 경우 치명적이었다. 위험한 순간이 오기 전, 사전에 조치를
취하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가장 필요한 것은 ‘관심’이었다. 사랑과 관심 속에 제때 적극적인 치료를 받으며 자란 사랑이는 3달 뒤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했다.

 

진심을 다하다

“아이가 살기 위해 열심히 싸우는 동안 의료진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합니다.”

신생아중환자실에는 세상에 조금 빨리 나온 이른둥이, 선천성 기형을 가지고 태어난 아기, 분만 과정에서 위험해진 아기들이 온다.
달수를 채우지 못한 미숙아들이 치료를 받고 무럭무럭 자라 외래 진료를 받기 위해 정의석 교수를 찾는다. 살이 통통하게 올라 또래의
아이처럼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는 아이를 보면 내 아이처럼 예쁘다고 했다.

“우리 병원의 신생아 치료 성공률은 전 세계 어떤 병원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습니다. 최고라 자부합니다.”

신생아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누구 한 사람의 공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오늘 하루만 넘기면 살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면 ‘내 하루를 가져가셔도 괜찮으니 이 아기에게 하루만 더 주세요’라고 기도할 때도
있어요.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분위기가 이곳 신생아중환자실에 있어요.”


진료실 밖에서 만난 보호자들은 그를 ‘신뢰할 수 있는 의사’라고 했다. 신생아중환자실에 있는 아이의 부모는 하루에 2번, 30분의 면회
시간을 제외하곤 아이를 의료진에게 온전히 맡겨야 한다. 아이를 중환자실에 홀로 두고 돌아가는 부모의 입장에선 ‘신뢰’라는 말이 가장
어려운 단어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보호자들이 그를 그만큼 믿을 수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도 귀 기울여
주기 때문이다.

“아이가 아프면 나 때문에 아이가 아픈 건 아닌지 자책하게 됩니다. 그때마다 ‘어머니, 잘하고 계세요’라고 응원해 주셔서 큰 위로와
힘을 받습니다.”


정의석 교수는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의료진 모두의 마음과 노력이 어우러져 좋은 결말을 얻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은 그 위에 진심을 얹었을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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