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면역세포치료, 답을 찾을 때까지 2019.04.15

면역세포치료, 답을 찾을 때까지 - 병리과 이희진 교수

 

수술장에서 ‘프로즌(동결절편 검색)’ 요청이 오자 이희진 교수는 하던 일을 즉시 멈췄다. 수술 중인 환자의 병변
부위로부터 채취한 검체에서 조직 특성과 악성 여부를 서둘러 판독해야 한다. 이 교수의 판단이 수술의 중요한
가이드가 되기 때문이다. 작은 단서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했고 임상의에게 수술절제면의 악성 세포 존재
여부를 알린 후에도 다시 한번 훑었다. 시간적 여유나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없는 응급상황에서 이 교수는
늘 긴장과 자기 점검을 반복한다


실패해도 괜찮아

“사실은 목표하던 대학의 의대에 가지 못했고 내과에 지원했다가 떨어졌죠.”

이희진 교수는 실패담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의사였던 부모님과 우수한 학교 성적,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당연하게 여긴
꿈이 있었다.

“그런데 목표한 것이 제일 좋은 결과라는 보장은 없는 것 같아요.”

작은 실패들은 오히려 또 다른 기회와 만족을 가져다주었다. 출신 학교와는 상관없이 실력 있는 의료진이 어우러진 우리 병원에
입사해 합리적이고 열정적인 분위기를 맛보았다. 전임의 시절엔 병리과 공경엽 교수의 연구를 도우며 유방 분야에 안착했다.
확실한 파트와 길잡이가 되어주는 교수가 있어 연구와 진단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한 병원에서 오래 일하는 것을 성공으로 볼 순 없지만 업무 만족감의 지표는 될 거 같아요. 나쁜 일은 빨리 잊고 생각한 건 바로
행동에 옮기는 성격 덕분에 지금의 제 자리를 찾았다고 봐요. 성공과 실패로 구분 지어 계산하고 고민했다면 시작도 못 했을 일이
많아요.”


진단을 넘어 치료에 내민 도전장

 

종양 면역치료 연구를 진행하는 데 이 교수의 긍정적인 마인드와 특유의 추진력은
빛을 발했다. 5년 전 학회에서 환자의 면역 세포를 키우면 암 치료제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을 접했다. 늘 봐오던 세포가 치료에 쓰인다는 건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였다. 아직 연구 기반이 없는 주니어 스텝이었지만 무작정 연구 계획서를
썼다. 검체 접근성이 좋은 병원에서 주도해야 할 연구였고, 환자에게 뽑은 세포를
다시 주입하려면 외과, 종양내과와의 협업이 필요했다.

“기존의 항암 치료엔 반응이 없었으나 면역세포치료로 완치된 환자가 있다는 점에
희망이 보였습니다. 면역치료는 체내의 면역세포 기능을 최대한 끌어올려 치료
효과를 보는 개념이에요. 완치 확률이나 감수해야 할 비용의 가치를 두고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순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가 두려워 시도조차 안 할 순 없죠.”


면역세포를 배양해 치료약으로 만드는 연구를 진행한 지 3년 반 째다. 그 과정에서
세포독성 T세포(종양세포를 공격하는 대표적인 면역세포)의 임상적 의의와 유방암
조직으로 침윤하는 기전을 밝혀내 지난해 암학회지에서 기초 우수 논문상을
받았다.
 

계획서를 쓸 당시에 한 명이었던 연구원은 열네 명으로 늘었고, 현재 치료제를 만들 회사를 준비하고 있다. 매일 생경한 경험이
펼쳐지지만 온몸으로 부딪치며 답을 찾는 중이다.

“아직은 제가 부족한 게 많고 갈 길이 멀지만 암을 치료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씩 가고 있다고 믿어요. 암환자들에게 언젠가 새로운
치료법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건강한 자극을 주고 받으며

이 교수의 주된 업무는 수백 장의 슬라이드를 보며 진단하는 일이다. 환자를 대면하지 않은 채 조직 및 세포 검사로만 병기를 판단하는
부담은 온몸의 피로로 돌아온다. 조금만 방심해도 중요한 진단을 놓칠 수 있다.

“한 달에 한 번 병리과 전원이 모여 검체 진단 과정을 검토하는 QI(Quality Improvement)를 진행해요. 우리의 수준을 증명하는
과정이면서 개인적으로는 과거의 케이스들을 복기하는 시간이에요. ‘내가 잘하고 있나?’ 곱씹다 보면 느슨해진 마음을 다잡게 되죠.”


이 교수에게는 든든한 지원군도 있다.

“진단은 제가 하지만 병리팀이 검체 접수부터 슬라이드를 제작하는 과정 내내 완벽에 가까운 조율과 피드백을 보여줍니다. 새로운
기술이나 장비가 있으면 빠르게 적용해서 기존 과정의 부족한 면을 보완해주고요. 일터에서 좋은 자극을 주는 팀을 만난 건 큰
행운이에요. 우리 병원 병리과의 강점이기도 합니다.”


무수한 질병의 인과 관계가 얽혀있는 작은 세포 안. 그 속에서 이희진 교수는 숨겨진 치료의 열쇠를 찾고 있다.
강단 있게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확장해 가는 발걸음에 응원을 보낸다. 결과를 말하기엔 이르지만 꽤 의미 있는
도전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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