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환자의 몸과 마음을 돌본다는 건 2019.06.20

환자의 몸과 마음을 돌본다는 건 - 산부인과 이사라 교수

 

“99세의 환자가 찾아온 적이 있어요. 골반 장기들이 질을 통해 빠져나온 골반장기탈출증이었죠. 좋아하던
목욕탕에 수십 년째 가지 못하고 딸조차 모르는 비밀이었대요. 참고 참다가 용기 내어 동네 산부인과에 갔더니
죽을병도 아닌데 그냥 사시라며 돌려보냈다는 거예요. 고령이어서겠죠. ‘내일 죽어도 이 상태로 관에 들어가긴
싫소’라는 어르신의 한마디에 저는 수술을 진행했어요. ‘이게 여성의 마음이지!’ 싶었거든요.
여성의 내밀한 부분을 보듬는 것이 제 역할이기도 하고요.”


여성에게 조금 더 가까이

환자의 평생 동반자가 될 수 있는 전공은 무엇일까? 이사라 교수를 산부인과로 이끈 첫 번째 기준이었다. 대를 이어 모녀의
출산을 맡는 뿌듯한 상상과 함께였다. 진료 현장에서 이 교수의 강점은 단순하게도 ‘여성’이라는 점이었다. 스스로 산부인과
진료를 받으며 느낀 점을 토대로 진료의 개선 방향을 찾아 나갔다. 직장 여성이자 아내고 엄마인 경험은 환자와의 긴밀한 공감
요소가 되었다.

“환자에게 편안한 의사로 다가가고 싶어요. 수치심 때문에 병원을 찾지 않다가 심각한 상태가 되어서야 오는 환자가 많거든요.
자궁근종이 횡격막까지 올라올 정도로 커져서 병원을 찾은 환자도 있었죠.”


초기에 발견했다면 간단하게 끝날 치료였다. 그러나 개복할 범위가 너무 커져 여러 병원이 수술을 마다했다.
이 교수는 단일공법으로 2.6kg의 혹을 일일이 잘라 빼냈다. 수술 시간은 꽤 오래 걸렸지만 환자는 작은 상처와 빠른 회복
속도에 만족하며 돌아갔다.

“제 주변의 병원 여직원에게 불안하고 답답한 산부인과 문제가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문의하라고 늘 당부합니다.
특히 생리 통증이나 월경 과다로 인한 빈혈 등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이라면요. 또 진료 과정에서 되도록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환자가 차마 묻지 못한 증상이나 숨겨온 질병을 발견할 수 있거든요. 치료를 모두 마치면 먼저 물어봐 줘서 고마웠다는 환자들의
인사를 종종 받습니다.”


도전의 잉태

 

이사라 교수는 2015년 세계 최초로 단일공 로봇수술을 통한 천골질고정술에
성공했다. 약 2.5cm 절개한 배꼽 구멍에 로봇 기구를 넣어 골반장기탈출증을
치료한 것이다. 이전보다 흉터는 작으면서 수술 시간을 훨씬 단축했다.
낮은 재발률과 빠른 회복, 성 기능 유지 효과도 뒤따랐다.

“해외 연수 중에 실질적인 로봇수술 참관과 교육의 기회를 많이 얻었어요. 인연이
잘 닿아 도전의 실마리를 얻은 거죠. 의술은 의사 개인의 자산이 아닌 인류의
자산이어야 한다는 걸 그때 깨달았습니다.”


이 교수는 현재 로봇 천골질고정술 180례를 달성하며 국내 최고 기록을 경신
중이다.

“단순히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라면 의미가 없을 거예요. 수술 상처에 예민한
환자들을 만나면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어 시작한 도전이었어요.
70대 어르신도 상처 크기부터 물을 정도니까요.”

 

이 교수는 도전을 부추기는 또 하나의 요인으로 ‘불편’을 꼽았다. 불편에서 개선점을 모색하며 창의적인 변화를 시작했다. 틈틈이
개발한 의료기기 특허가 11개. 앞으론 치료에 직접 도움이 될 의료기기를 내놓고 싶다는 욕심을 내비쳤다.


숙제는 아직 남아있다

생식의학불임클리닉엔 난임과 반복 유산 등의 환자가 대부분이지만 가임력 보존을 위해 암환자나 수술을 앞둔 환자, 35세 이상으로
결혼 시기가 늦어지는 이들의 방문이 느는 추세다. 얼마 전 이 교수는 시급한 항암치료 진행 후 더 이상 정자가 나오지 않는 10대
암환자를 만났다. ‘정자를 얼릴 수 있는 기회가 항암치료 전에 있었더라면….’ 속상한 기분은 적극적인 홍보 의지로 이어졌다.

“의료진이 불임 가능성을 미리 고지해도 생사의 문제에 당면한 암환자들은 이를 지나쳐 버립니다. 하지만 암 치료가 끝나면 후회할 수
있거든요. 병원 차원에서 구체적인 가임력 보존 정보를 제공해서 임상의뿐 아니라 보호자와 주변 환우들이 환자에게 권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더구나 생식의학은 매우 빠르게 발전하는 분야라 최대한 대비할수록 좋거든요. 여성은 난소 기능을 치료 기간에 정지시켜
항암치료의 영향을 덜 받게 하는 방법도 있고요. 향후 2세 계획이 있다면 암 진단을 받자마자 바로, 늦어도 입원하는 당일에
생식의학불임클리닉에 들러 상담하길 꼭 당부하고 싶어요.”

 


이사라 교수는 질문마다 적극적이면서도 사려 깊은 대답을 내놓았다.
그 모습은 환자에게도 애정을 가지고 관성에 젖지 않는 치료를 펼칠 것이라는 기대감을 들게 했다.
또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의술을 이야기할 땐 들뜬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나와 내 가족을 돌보는 심정으로
다가가면 그렇게 어렵거나 귀찮지 않아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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