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딱히 어떤 의사가 되겠다는 구체적인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는 하태용 교수. 하지만 흰 도화지에
조금씩 그림을 그려가듯 다양한 분야를 접하며 외과의 모든 기술이 집약된 간이식 분야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잘하는
것보다는 힘들어도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것, 남들이 좀처럼 가지 않는 분야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는 하 교수. 지금까지 그가 걸어온
길은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간은 어느 위치에, 어떻게 있느냐에 따라 수술법이 상당히 다양합니다. 건물로 치면 초고층 빌딩을 짓는 고난도의 수술이죠.
간이식을 할 줄 안다고 하면 웬만한 수술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태용 교수는 간이식 수술에서도 간을 공여하는 기증자의 수술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2015년 서울아산병원에서 이루어진 간이식
수술은 총 413건. 이 중 기증자 수술의 절반가량이 하 교수의 손끝에서 이뤄졌다. 하 교수는 늘 있는 일이라는 듯 편안히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그 목소리에서 확고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하태용 교수는 전임의 발령을 받은 직후 만났던 고 1 여학생 환자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급성 간부전으로 죽기 직전에 실려와 어머니의 간을 이식받은 환자였다.
“일주일 만에 깨어났는데 갑자기 간이 괴사하기 시작한 거예요.
다행히 엄마 친구분이 또 기증해서 수술을 했는데 그때만 해도 재이식은
실패할 확률이 무척 높았거든요. 간이식 팀 모두가 빨리 낫게 해서 대학
보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보살폈는데 결국 잘 회복해서 대학까지 가고
취직도 했더라고요.”
하 교수는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건강하게 외래를 찾는 그 환자를 볼 때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을 만나더라도 포기하지 말자'는 다짐을 한 번 더 가슴에
새긴다.
떼어내서 기증될 간과 기증자에게 남는 간, 양쪽을 가장 이상적인 해부학 구조로 어떠한 손상도 입히지 않은 채 잘라내야 하는 간이식
기증자 수술. 미세한 오차라도 건강한 기증자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기에 하태용 교수는 기증자 수술을 '이기기 힘든 싸움'이라고
부른다.
“어떤 수술이든 사망이나 합병증 가능성이 있기 마련인데, 기증자 수술만은 사망률과 합병증 모두 0%가 되어야 하거든요.
의료진에게는 기증자를 원래대로 건강하게 만들어서 퇴원시켜야 하는 의무가 있어서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겁니다.”
하태용 교수는 기증자들을 건강히 퇴원시키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기증자들의 장기적인 건강 상태에 대해서 연구하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생체 기증 수술의 역사는 이제 고작 20년 남짓. 장기 기증을 하고 5~10년간은 큰 문제가 없겠지만 그 이후의
사망률, 합병증, 후유증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연구된 바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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