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의사 이사라입니다.
20~30대 젊은 성인뿐만 아니고 10대 청소년이 암 진단을 받더라도, 의사들이 꼭 설명드리고 제안해야하는 어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암진단을 받아 이미 충분히 혼란스럽겠지만, 암 치료를 시작하기 전 중요하게 고려해보아야 하는 이야기, 가임력보존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환자가 암 진단을 받게 됐을 때, 의사들은 가임기 환자뿐만 아니라 ‘29세 미만’ 환자 모두에게 생식능력 보존에 대한 설명을 꼭 하게끔 되어있습니다. 10대 환자들도 물론 포함됩니다.
암종에 따라 다르지만 일부 유방암이나 혈액암, 혹은 육종, 고환암, 직장대장암 처럼 치료 과정 중에 난소나 정자가 영향을 받는 암은 향후 완치가 되어도 생식세포에 독성이 생길 수가 있고 항암치료 하는 기간이 길어지다보면 나이가 들면서 가임력이 떨어질 수 있어 미리 대비를 해놓는 차원에서 권유하게 됩니다.
선택은 환자와 보호자, 가족들의 몫이고 빨리 암 치료를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는 걸 잘 알고있지만, 이 가임력보존은 암 치료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준비해둬야 하는 부분이므로 꼭 먼저 생각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생식세포는 분열이 빠른 세포 중 하나입니다. 여성에서 월경이란 28일 주기로 난소 및 자궁내막주기가 계속 돌아가면서 생식세포가 분열하는 과정과 맞물려 나타나는 것 처럼, 생식세포는 매우 빠르게 분열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암세포 역시 빠르게 분열하며 성장하다보니 항암제중 빠르게 분열하는 세포를 골라 공격하는 것들은 생식세포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항암제의 영향을 받은 생식세포들은 독성을 가지게 돼 암치료를 받고나면 추후 난자의 배란 뿐 아니라 배아의 수정 및 착상 단계에서도 성공률이 낮아져 임신 자체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항암제중에는 생식세포에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는 항암제도 있고, 항암치료 없이 수술만으로 암치료가 끝난 경우에는 생식세포 영향이 없기 때문에 미리부터 걱정하실 필요는 없고, 암종에 따라서도 향후 임신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다르니까 치료 시작 전에 주치의 선생님 그리고 산부인과 전문의와 함께 상의를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남자 환자의 가임력 보존은 사실 정자만 받으면 되기 때문에 저희 서울아산병원은 주 진료과 외래 보시는 날 바로 산부인과 협진을 요청하시면 정자 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젊은 남성 암환자는 혈액암 환자가 많은데, 혈액암은 이미 진단되었을 때 정자 상태가 안좋은 경우도 많거든요. 그래서 의심이 되는 경우는 확진을 받기 전이라도 특히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정자 냉동을 해두는게 중요합니다.
여성 환자의 경우, 예전에는 배란과 월경 타이밍을 고려해 여러 개의 난자 채취를 위해 과배란주사 주사를 맞는 날짜를 지정하고 과정을 시작하다보니 난자를 채취할 때까지 한두달 시간이 걸리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배란일, 월경일을 고려하지않고 바로 난자 채취 과정을 시작하는 방법으로 대부분 2주 이내 시간만 있다면 난자 채취가 가능해졌습니다. 그래서 2주정도 후에 바로 항암치료를 시작할 수 있어서 치료가 지연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2주라는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고 바로 수술을 받아야 되는 상황이라면 암수술을 할 때 수술장에서 난자를 직접 채취하거나 난소일부를 보관하는 방법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으니 처음부터 포기하지 말고 상황에 따라서 의료진과 함께 상의후 결정하시면 되겠습니다.
우리가 통계적으로 냉동된 난자 15개가 있으면 한 명의 건강한 아이를 출산할 수 있다고 보고있습니다. 국내법에서는 시험관시술로 배아이식을 할 때, 35세 전의 여성은 한번에 2개의 배아를 이식을 할 수가 있고, 35세 이상에서는 3개까지 이식을 할 수가 있습니다.
냉동 보관된 난자나 배아가 많으면 좋긴 하지만 무리하게 많은 난자를 키우는 것은 과배란증후군의 우려는 있지만 가능하다면 일찍, 난자가 좋을 때, 냉동을 많이 해두는 게 추후 임신과 출산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정자는 대부분 한번에 정액을 채취해서 여러 개로 나눠 담아 보관하게 됩니다. 정액의 양이 너무 적거나 정자의 밀도가 너무 낮은 게 아니라면 대부분 한번에 채취하고 끝나게 됩니다. 하지만 정자 역시 환자상태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어, 40대 이상의 환자라면 더 많은 양의 정액을 냉동하는것을 권합니다.
기혼자인 경우에는 난자와 정자를 수정한 뒤 얼려두는 ‘배아 냉동’을 권하게됩니다. 배아를 보관하는게 난자, 정자를 따로따로 냉동하는 것보다 추후 임신 성공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인데요. 현재 가임력과 향후 자녀계획을 감안해서 배아 냉동 횟수 등을 상의하시면 되겠습니다.
항암 치료 시기가 지나고 나면 항암제나 방사선에 대한 영향이 평생 계속 남아 있지는 않지만 각 치료방법에 따라 최소 6개월~1년 피임을 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우려할 점은 앞서 말씀드렸 듯이 생식세포에 독성이 생기거나, DNA 변화를 이미 유발하게 되면 임신 후에 아이에게 유전자 문제가 있을까봐 걱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암치료 시작전에 미리 얼려둔 냉동배아를 해동해 이식하는 경우, 고령 임신이라거나, 부모에게 유전질환이 있다거나, 우려되는 부분이 있을 때 배아를 스크리닝 할수 있는 유전자검사를 할 수 있습니다. 배아의 일부세포를 검사해서 유전질환에 대해서 미리 스크리닝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있습니다. 그런 검사를 통해 우려되는 부분을 좀 해소할 수도 있습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난자와 정자, 배아의 냉동은 기본적으로 5년동안 유지됩니다.
5년이 지났다고 해서 냉동된 난자,정자, 배아의 질이 떨어진다거나 나빠지는 건 아니기 때문에 냉동기간을 연장한다고 해서 부담을 느끼실 건 전혀 없습니다.
5년이 지난 후에도 계속 냉동을 유지할 것인지 연락을 드리게 되는데, 이때 임신계획과 본인의 건강상태를 고려해 연장 여부를 결정하시면 됩니다.
항암 치료가 계획되고 이미 건강 상태가 나빠졌을 때 생식세포 냉동을 하게 되면 사실 아주 힘듭니다. 환자분들의 마음도 그렇고, 시간이 지체되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고, 남자분들은 이미 정자 상태가 나빠진 경우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서울아산병원은 암 치료에 크게 영향 없이 생식세포 냉동을 끝낼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해두었습니다. 젊은암환자클리닉에서 진료를 받으면 산부인과 전문의와 상의할 수 있고, 다른 진료과에서 암 의심상태나 암진단을 받았더라도 원할 경우 산부인과 협진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임신 계획이 없더라도, 내가 살면서 언젠가 임신과 출산을 원할 때 ‘암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이 여러분들의 마음 한켠을 무겁게 하지 않도록, 가임력 보존에 대해 미리 대비하실 수 있게 도와드릴 테니 어려운 주제이지만 한번쯤 깊게 고민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관련 의료진
연관 콘텐츠